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원사지 출토 철제여래좌상 (문단 편집) == 내용 == [[파일:보원사지 출토 철제여래좌상4.jpg]] || [youtube(f5I2PQ_CLKg)] || 높이 150㎝. 1918년에 [[충청남도]] [[서산시]] 운산면 용현리 서산의 보원사 터에서 발굴된 [[통일신라]]시대 철제불상으로, 해외에서 열린 ‘한국 미술 5000년전’ 전람회, 그리고 [[미국]] [[메트로폴리탄 박물관]] 신라 특별전에 출품되는 등 매우 아름답고 완벽한 주조 기술을 자랑하는 불상으로 명성이 높다. 딱 벌어진 어깨에 당당한 체격, 수려한 얼굴 생김에 알맞은 비례 등이 [[신라]] [[석굴암]](石窟庵) 본존불과 완전히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다. [[귀]] 아래 목에 [[신라]] 불상 특유의 삼도(三道)가 뚜렷하며, 오른팔과 어깨 및 [[가슴]]이 드러나 보이는데 특히 가슴이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. 옷깃은 한 겹의 단을 대었고, 그 밑으로 규칙적인 옷 주름을 만들었다. 일반적으로 철불은 [[철(원소)|철]]이라는 재료는 특성상 마무리가 거칠기 마련인데, 보원사지 출토 통일신라 철제여래좌상은 비교적 숙련된 공인이 공들여 제작하였기에 이음매도 매끄러운 편이다. [[파일:보원사지 출토 철제여래좌상5.jpg]] [[파일:보원사지 출토 철제여래좌상6.jpg]] [[https://blog.naver.com/nimbus89/70122468293|사진 출처 : [충남 서산시] 보원사 터에서 나온 유물들 소개]] 이 불상을 발굴할 당시 [[고려]] 초기에 만들어진 철제불상 1점이 더 발견되었는데 이 고려철불은 현재까지 [[한국]]에서 발견된 철제불상 중 가장 크다고 한다. 나말여초 시기에 충남 보원사가 상당히 위세 있는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. 발견된 불상 2좌 모두 손 부분이 의도적으로 절단되었으므로 [[조선]]시대에 유학자들이 파괴하여 파묻었다고 추정한다. 보원사지 출토 [[통일신라]] 철제여래좌상의 조성시기는 8~9세기라고 추정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. 12세기 [[송나라]] 때부터 철불이 등장하는 [[중국]]이나 13세기 [[가마쿠라 시대]]부터 철불을 만들기 시작한 [[일본]]보다 적어도 200년 이상은 앞선 것으로 당시 한국의 철 주조 기술이 [[동양]] 최고였음을 증명해 준다.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2598643&cid=51929&categoryId=54145|향토문화전자대전 : 보원사지 출토 통일신라 철제여래좌상]]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[[한국]]의 철제 불상으로, 당시 신라의 불교 문화와 철제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